10. 약초 * 객지에서 몸이 아프면 그것만큼 서러운 일이 없다. 예수는 늘 건강에 유의했다. 다행히 아파 눕는 일은 없었다. 그런 예수에게 무슨 비결이나 있는 줄 알고 주변에서 물어온다. 그럴 때 예수가 하는 말이 있다. "잘 자고, 잘 먹고, 잘 싸시오." 그러면 사람들은 놀린다고 화를 낸다. 그러면 더 할 말이 없다. 사실 예수가 남몰래 즐기는 여기가 있다. 약이 될 만한 풀을 찾아서 뜯어 말리고 보관하는 것이었다. * 예수의 일생 2023.05.03
9. 유랑 * 1. 예수는 이 마을 저 마을, 발길 닿는 대로 다녔다. 매번 요셉에게 핀잔을 듣던 어줍잖은 기술이 용케도 객지 생활의 밑천이 되어주었다. 어딜 가도 밥은 얻어먹고 지낼 만했다. 행군 대열을 만났다. 말 엉덩이가 피둥피둥하고 수레 바퀴가 우람한 이국 군대였다. 군복 갑주가 햇빛에 번쩍거렸다. 예수는 부대를 따라다니며 심부름을 했다. 밥을 짓고 짐을 날랐다. 먼 데를 다녔다. 오뉴월에 하얀 눈을 이고 있는 산맥을 보았다. 타보르 산과는 달랐다. 파도가 짐승처럼 달려드는 바다를 보았다. 갈릴래아 호수와는 달랐다. 많은 데를 다녔다. 이리로 가면 레바논이라고 했다. 이리로 가면 아라비아라고 했다. 이리로 가면 시리아라고 했다. 거기를 지나면 그리스이고, 또 거기를 지나면 로마라고 했다. 나라 안팎에 공사를.. 예수의 일생 2023.05.03
8. 출가 * 예수는 요셉과 마리아를 자리에 청하고서, 집을 떠나겠다는 결심을 알렸다. 요셉은 성이 나서 묵묵히 앉았고, 마리아는 돌아앉아 울음을 훌쩍였다. 떠나는 날 아침에 요셉은 일찍 나가고 없었다. 동생들은 집 떠나는 언니를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했다. 예수는 일일이 동생들의 머리를 쓰다듬고 손을 잡아 보았다. 마리아가 고개 마루까지 따라나왔다. 마리아는 은전 몇 닢을 싼 손수건을 내밀었다. 요셉이 한 달치 노임을 당겨받은 것이었다. 예수가 작별 인사를 하자 마리아는 울음을 터뜨렸다. 예수는 곧장 언덕을 걸어 내려갔다. 그 시각에 요셉은 마을 회당에서 기도를 하고 있었다. * 예수의 일생 2023.05.02
7. 음성 * 어쩌다 가끔 소리가 들린다. 가늘고 나지막한 사람 목소리이다. 그것은 귀로 들리는 게 아니다. 등골을 타고, 머리를 울리며 들어오는 것처럼 느껴진다. 언제부터 그랬는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아무튼 오래 되었다. 소리는 뒷산 바위에 올라앉아 석양을 바라보고 있을 때, 밤에 꿈에서 깨어나 가만히 누워있을 때도 들렸다. 의미는 잘 알 수 없다. '예수야, 예수야' 부르는 것 같기도 하고, '나가라' '떠나라' 재촉하는 것 같기도 하다. * 예수의 일생 2023.05.02
6. 목수 * 요셉과 마리아는 자꾸 아이를 만들어 냈다. 누우면 밟히고, 서면 부딪혔다. 밥때가 되면 난리가 났다. 먹는 입은 줄이지 못하니 일하는 손을 늘여야 했다. 예수는 요셉을 따라 일을 나갔다. 예수가 보기에 요셉은 솜씨가 뛰어난 목수였다. 그러나 돈을 버는 데는 서툴렀다. 주는 대로 받고, 안 주면 못 받았다. 예수는 가난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요셉이 보기에 예수는 일을 계속할 아이가 아니었다. 일이 손에 붙지 않았다. 일하다 말고 멍하니 앉아 있는 예수를 보면서, 요셉은 '도대체 저 아이의 머리 속에는 무엇이 들어있는 걸까' 궁금했다. * 예수의 일생 2023.05.02
5. 출생 * 아기가 태어났다. 이름은 예수이다. 남자 아이가 나면 그렇게 부르기로 요셉과 마리아는 미리 이름을 지어 두었다. 요셉은 포대기를 들치고 아기를 들여다보았다. 아기가 누구를 닮았는지 궁금했다. 마리아를 닮았나? 누구를 닮았나? 요셉은 이내 머리를 저었다. 사람은 다 하느님의 자식이니 하느님을 닮았겠지. 요셉은 아기에게 인사를 했다. "아가야, 네가 우리에게 와줘서 고맙다." 요셉은 마당가에 나와 섰다. 남이 버리고 간 집에 들어와 살다보니 집이란 게 꼴이 엉망이다. 아닌게 아니라 아이를 외양간에서 낳았다는 소문이 나지나 않을라. 날씨가 풀리면 손을 좀 봐야겠다. 동네 사람들이 곡식과 과일 등을 들고 찾아왔다. 요셉은 산비둘기 한 마리를 구럭에 담아들고 뒷산 신당으로 향했다. * 예수의 일생 2023.05.02
4. 마리아 * 이상한 소문을 들었다. 마리아가 임신을 했다는 것이다. 요셉은 픽 웃고 말았다. 그럴 이치가 없지 않은가. 소문은 그치지 않았다. 요셉은 마리아를 만나 보았다. 마리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고개를 떨구고 울기만 했다. 요셉은 생각했다. 두 가지를 생각했다. 하나는 사랑을 잃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또 하나는 작은 새 생명을 고아로 만들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고아는 요셉 자기만으로 충분했다. * 예수의 일생 2023.05.01
3. 혼약 * 동무들은 거의 다 장가를 들었는데, 요셉은 그런 행사를 남의 일로 알았다. 나는 부모 형제는 고사하고 일가붙이 하나 없는 천애 고아이다. 나는 밭 한 뙈기, 가축 한 마리도 가진 것 없는 가난뱅이이다. 마리아 쪽에서 혼담이 들어왔을 때 요셉은 깜짝 놀랐다. 언감생심 마리아라니, 마리아가 내 각시가 된단 말인가? 두말 할 게 없었다. * 예수의 일생 2023.05.01
2. * 요셉. * 할아버지. * 야곱 혹은 엘리의 아들인 요셉이란 아이를 미아로 보호하고 있다고 사방 이웃 마을에 통지를 띄웠으나 아무도 아이를 찾아가지 않았다. 결국 아이는 동네에서 공동으로 떠맡았다. 집집이 돌아가며 먹이고, 입히고, 재웠다. 아이는 탈 없이 자랐다. 다만 숫기가 부족한 것이 흠이라면 흠이었다. 또래들과 어울려도 뒷전으로 돌았다. 그런 아이를 보고 동네 사람들은 '착한 요셉'이라고 불렀다. 요셉은 그럭저럭 동네 머슴으로 컸다. 일거리가 있는 데면 어디든 불려가 부쳐먹었다. 머리 쓰는 것이 별로 똘똘하지 않고 힘이 튼튼하지 않은 데 비하면 손끝은 야무진 편이었고 무엇보다 근면했다. 동네에서 새는 지붕, 무너진 담, 뚫린 벽, 찌그러진 문짝은 다 요셉의 차지였다. * 우물집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지난해 가을에 할머.. 예수의 일생 2023.05.01
1. 노인 * 노인은 하루의 들일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길갓집 굴뚝에서 밥 짓는 연기가 피어올랐다. 아내는 저녁 식탁에 무얼 차려 내놓을까? 아내는 종일 무얼 하고 지냈을까? 동구나무 그늘에 무언가 눈에 띄었다. 노인은 가까이 가보았다. 웬 아이가 앉아 있었다. 동네 아이는 아니고, 처음 보는 아이였다. 아이는 몹시 울고난 기색이 역력했다. 간간이 어깨를 들썩이며 숨을 꺽꺽 내쉬었다. 길을 잃었나? 누가 버렸나? 노인은 아이에게 말을 시켜 보았다. 아이는 대답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좀 덜된 아이인가? 하기야 이 아이가 지금 무슨 정신이 있겠나? 그래도 용케 제 이름은 댔다. 요셉이라고 했다. 아비의 이름을 물었더니 야곱이라고 했다가 엘리라고 했다가 왔다갔다 했다. 노인은 아이를 데리고 동네로 들어왔다. * 예수의 일생 2023.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