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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나는 그때 현장에 없었다. 고향에 급한 볼일이 생겨서 며칠간 휴가를 다녀왔더니 그 사이에 사건이 발생해 있었다.
교단의 분위기가 그 앞뒤로 해서 크게 달라졌다는 게 느껴졌다. 사람들은 뭔가 새로운 사태가 전개될 것을 기대라도 한다는 듯이 들썩거렸다.
그러나 이면을 들여다보면 사정이 그리 밝지만은 않았다. 며칠 전까지 생때처럼 멀쩡하던 라자로가 왜 갑자기 죽었는지 그것부터가 수상하다고 수군거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유다가 "토마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왔다. 자기 의견은 감춰두고 남의 의견을 들으려고 들이대는 것이 유다답다. 나는 경망스런 유다에게 내 속마음을 털어놓지 않았다.
현재로서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내 별명마따나 다만 의심스러울 뿐이다. 사람들이 괜히 나를 '의심쟁이 토마스'라고 부르겠는가?
예를 들어 "여기 나무에 구멍이 하나 있다"고 누가 말한다고 치자. 그걸 보지도 않고 그냥 믿어서는 안된다. 눈으로 보더라도 믿어서는 안된다. 손가락이나 손을 집어넣고 휘휘 저어봐야 비로소 알 수 있다.
남의 말을 듣고 그것을 그대로 믿고 따르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어리석음은 죄악이 될 수도 있다.
이제부터 시간을 갖고 찬찬히 내막을 알아봐야겠다. 과연 한번 죽었던 사람이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말인가? 염습을 해서 굴 속에 뉘어놓았던 시신이 천을 풀며 걸어나올 수 있다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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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신약성경 복음서를 보면 예수는 평생에 두 번 눈물을 흘렸다.
한 번은 예루살렘 도성을 바라보며 울었다(루카 19: 41). 공인 예수가 와닿는다.
다른 한 번은 라자로가 죽어서 묻혔다는 말을 들었을 때였다(요한 11: 35). 개인 예수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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